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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종

구포대구상회
37년간 과일상으로 살아온 그, 세계 배낭여행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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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인터뷰/구포대구상회 이성종(62세)
37년간 과일상으로 살아온 그, 세계 배낭여행을 꿈꾸다

어린 시절에 대해 들려주시겠어요?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아버님의 사업이 기울면서 집안이 어려워졌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그 때 누구나 그러하듯 살림은 궁핍했다. 아버지는 지금 구포역 앞 청과물도매상 거리에서 과일상을 하셨다. 30년 전만 해도 이 거리는 과일상 50여 곳이 성업하던 북구 유일의 청과물도매시장으로 새벽 5시부터 8시까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을 이뤘다. 그때는 엄궁 청과물도매시장, 석대 반여농산물시장이 없을 때였고, 구포가 김해, 삼량진, 밀양 등을 있는 교통이 중심지로 경남 일원에서 생산되는 과일들이 이곳을 통해 부산 전역으로 실려나갔다.

언제부터 지금의 과일가게를 시작하셨나요?
나는 25살 되던 해에 지금의 구포대구상회 앞 난전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친구인 부산상회 김기덕이와 둘이서 자리를 빌려서 각각 장사를 했다. 마흔 두 살이 외었을 때 이 건물의 주인이 되었다. 덕분에 두 아이를 잘 키워 이제, 각자 가정을 꾸려서 잘 살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창 장사가 잘 되던 시절일 때는 직접 물건을 하러 다니셨죠?
전국의 산 좋고 물 좋은 곳은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할 만큼 과일을 사러 산지를 누볐다. 배달기사를 두고 있었다. 과일소매상들이 주문을 하면 배달기사들이 종일 배달을 하느라 바빴다. 돌아보면 참 좋은 시절이었다. 그렇게 화려했던 청과물도매시장이 교통지형이 바뀌고, 구포역이 쇠락하면서 같이 쪼그라들어 현재는 여섯 개의 과일 점포만 남았다. 몇 년 전부터 산지에 가서 트럭으로 물건을 해 오지 않는다. 물량을 소화하지 못해서 무조건 손해다.

요즘 사람들의 과일소비 패턴이 이전과 다르다는 말씀이신가요?
예전에는 물량확보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다양하게 구색을 갖추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많이 팔리는 과일이 제사상에 올리는 과일, 즉 사과, 배, 포도, 수박, 딸기이다. 올해 구정에는 한라봉, 천혜향 등이 배보다 많이 팔렸다. 지금은 오렌지, 자몽 등 수입 과일을 많이 찾는다. 이제 좋은 과일을 확보하기 위해 산지로 달려갈 필요도 없다. 지금은 오랜 단골들이 전화 주문을 하면 아내와 둘이 번갈아 가게를 보면서 배달하는 정도이다. 내 건물이니까 장사를 계속 할 수 있지, 세를 물면서 할 만한 장사는 아니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시나요?
새벽 4시 기상해서 엄궁동 과일도매시장에서 물건을 해온다. 그리고 6시에 가게문을 열고 9시까지 손님이 북적인다. 10시가 넘으면 손님이 거의 없지만 오후 5시까지 가게를 지킨다. 배달 전호가 오면 배달을 가고 오후 5시가 되면 가게 문을 닫고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러 간다. 매일 두 시간 반씩 걷기를 한다. 구포역에서 만덕1터널까지 걸어갔다가 걸어온다.

언제까지 장사를 계속하실 건가요?
앞으로 3년을 더해서 65세가 되면 그만두려고 한다.
37년간 해 온 과일장사를 그만두시고 무엇을 할 계획인가요?
2020년 그린벨트가 풀리고, 구포역세권 상권이 살아나면 이 자리에 5층 건물을 올리고 싶다. 그건 그 때 가보야 알 일이고, 오랫동안 꿈꾸었던 것은 세계를 배낭여행 하는 거다. 2년 계획으로 배낭여행을 가려고 한다. 그래서 매일 걷기로 체력을 키우고 있다. 또 시간이 날 때는 인터넷에서 배낭여행 정보를 모으고 있다. 불교 신자라서 유명한 절을 중심으로 어느 계절에 가면 좋은지에 따라 코스를 잡고 있다. 가족들을 위해 40여 년을 헌신했으니까, 나를 위해서 2년을 보내도 되지 않겠나.

상인으로서 철학이 있다면?
내가 무슨 철학이 있겠느냐.

그럼 상인으로서 소신이 있다면?
나는 장사꾼이다. 장사꾼은 계산을 잘 해야 한다. 줄 돈을 잘 주고, 받을 돈을 잘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줄 돈은 잘 주었는데 받는 것을 잘 못 받았다.

그래도 건물주인이시잖아요?
신용이 없으면 장사를 할 수 없다. 요즈음 세상은 분명하더라, 남을 속이는 게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