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구포 사람들

김영애

묵도리밀면 대표
장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 힘이 닿은 순간까지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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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음식점은 언제 시작하셨나요?
A. 1986년부터 먹는 장사를 시작했으니 삼심 년이 훌쩍 지나갔어요. 서면 신천지백화에서 <묵도리양분식>이란 간판을 걸고, 주방장을 데리고 장사하면서 어깨너머로 음식 하는 것을 배웠어요. 장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졸다가 종점까지 가곤 했어요. 당시 버스종점이 인적이 없는 화명 용당포라는 곳인데 택시도 다니지 않는 거리에 서서 무서움과 집에서 시어머니가 얼마나 걱정하고 계실까 싶어 속을 태웠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스럽게 선한 자가용운전자를 만나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겁이 많고, 부끄러움이 많은 내가 장사할 용기를 어떻게 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 당시 남편은 외항선을 탔고, 시어머님이 도와주시긴 하셨지만 어린 아이 셋을 키우면서 장사를 해보겠다고 나선 건 내 인생의 도전이었어요.

Q. 그럼 언제부터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셨어요?
A. 사는 데 쫒게 서 적어두지 않아서 정확한 연도를 모르겠어요. 아마도 두 서해 뒤에 이 자리에 현재보다 규모는 작게 <묵도리양분식>을 이어서 했어요. 당시에는 양분식이 대세러 돈가스, 쫄면 등을 팔았어요. 그 뒤에는 곰탕, 곱창, 낙지전골을 배워서 신나게 장사를 했었어요. 살림집은 시집와서부터 가게 뒤쪽에 있었어요. 시아버님이 구포역에 역무원으로 일했는데, 이 자리가 관사자리였어요. 일제 시대에 지어진 건물인데, 71세인 남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불하를 받았으니 60년째 이 집에서 살고 있는 셈이죠. 예전에는 집 안에 일본식 목욕탕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방이 더 필요해서 그 목욕탕을 깨서 없애고 구들을 넣고 방을 넣었어요. 만약에 그 목욕탕을 살려두었으면 명물이 되었을 텐데 말이죠.

Q. <묵도리밀면>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A. 2000년경으로 기억합니다. 메뉴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Q. <묵도리밀면>을 사랑하는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묵도리밀면만의 비법이 있다면?
A. 사람들이 음식 맛을 이야기 할 대 ‘손맛’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하지만 저는 음식의 맛은 좋은 식재료라고 생각해요. 저는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장을 직접 담아서 사용했고, 일 년치 국산고추가루분을 한해 전에 미리 준비를 해서 저장해요. 아직 수입고추가루를 쓰지 않아요. 마늘도 시장에서 기계로 분쇄해서 파는 것을 사용하지 않아요. 팔이 아파도 내 손으로 절구에 찧어서 사용해요. 맛에서 차이가 많이 나요. 그리고 오이의 경우 식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침마다 성심병원 앞에 오는 야채트럭에서 사와서 사용합니다. 배달하는 오이를 사용해 봤는데 아삭함이 덜 하더군요.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내 가족에게 먹인다는 마음으로 음식을 하고 있어요.

Q. 남편이 오랫동안 병중에 계시다고 들었어요. 병 수발하면서 장사를 한다는 게 쉽지가 않은데 사장님은 늘 웃고 계세요. 그 미소는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A. 남편이 뇌일혈로 1995년에 쓰려지셨어요. 다들 돌아가실 거라고 했어요. 백병원에 장기 입원을 해 있다가 집으로 와서 생활하고 있어요. 환자가 집에 있으니 늘 마음이 불안해요. 혹시라도 내가 없는 사이가 변고가 생기는 게 아닌 가 외출을 하면 노심초사가 하게 되요. 오랜 세월 같이 산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한때 우울증이 오더라구요. 제가 어머님을 어려워도 하면서도 많이 의지를 하고 살았었나 봐요.
저희 집의 밀면을 드시고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맛있다’고 말씀해주시는 손님들이 계세요. 손님들이 해 주시는 칭찬이 참 힘이 되요. 참 고맙구요. 그런 감사하는 마음이 미소 짓게 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Q. 살아가면서 숨구멍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해요. TV에서 가요무대를 하면 남편이 당신 좋아하는 거 한다고 나를 불러요. 가수들 따라서 목청껏 노래 부르면서 피로를 풀어요. 또, 오래 동안 이웃으로 지낸 이들과 계모임을 해요. 그 모임이 있는 날에는 남편에게 미리 늦을 거라고 언질을 해둬요. 그날은 노래방에 가서 등이 땀에 흠뻑 젖을 만큼 노래하고 춤추고 웃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어요. 그러고 나면 또 살아갈 새 힘이 생겨요.

Q. 앞으로 장사는 언제까지 하실 생각이고, 어떤 꿈을 꾸고 계신가요?
A. 장사는 내 힘이 닿는 순간까지 하고 싶어요. 이제 장사는 돈을 버는 생계를 떠나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꿈은 없어요. 만약에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능력 있는 남자로 태어나서 아내를 호강시키는 사람이 되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