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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 사람들

원영화

기억속의 그 맛,
52년 전통의 동양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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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반점은 언제 문을 열었나요?
‘동양반점’이란 간판이 걸린 지는 60년이 되었지만, 화교 1세대인 선친께서 동양반점을 1967년에 인수하셨으니까 ‘52년의 역사’로 봐야한다. 1972년에 현재의 자리에 새로 건물을 올려 영업을 하고 있다.

주방에 언제부터 들어가셨나요?
1969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살이 되던 해에 자연스레 주방에 들어갔다. 중국요리의 입문은 설거지, 양파껍질 까기 부터이다. 주방에 들어가도 요리를 배우고 음식을 내는 데까지 짧게는 삼년, 길게는 5년 이상이 걸리는 시대였다. 얼어붙는 겨울에도 온수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다고 맞기도 많이 맞았다. 그 때 키운 체력이 일흔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요리를 해 낼 수 있는 밑천이 되었다.

요리스승님을 꼽으신다면?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다. 서라벌호텔, 코모도호텔의 중식부에서 주방일을 배울 때 만났던 주방장들이 요리스승들이시다. 그리고 나의 친형님에게 많이 배웠다. 형님은 초창기 동양반점의 주방장이었고, 미국으로 터를 옮겨 중국집을 운영하셨다.

동양반점은 구포역세권 맛집으로 꼽히는 데, 동양반점의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노포(老鋪)이다 보니 손님들도 오랜 단골들이 대부분이다. 어릴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왔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한창 현직에서 왕성하게 일할 때 식사하러 왔던 분들이 은퇴하고도 찾는다. ‘기억 속의 맛’이란 게 있다. 손님들은 “음식이 옛 맛 그대로 한결같다.”라고 한다. 요즘 중국음식점들이 조미료와 설탕을 많이 쓴다. 그 맛으로 중국음식을 기억하는 이들은 우리 집 음식이 심심하고 맛이 없을 거다. 음식재료로 장난을 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집과 비교하면 요리의 양이 많지 않다. 서비스 만두가 없는 집이 동양반점이다. 직접 만들지 않은 만두를 손님상에 내고 싶지 않다. 만두를 만들면 다른 요리를 못 쳐낸다.

사모님께서 집에서 보는 남편과 주방에서 일하는 남편은 완전 딴 사람이다.
요리를 할 때는 매우 예민해서 조심스럽다고 하시던데요. 지금도 요리를 하실 때 긴장이 하시는 건가요?
아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요리를 내가 한다. 맛을 위해 미리 만들어두지 않고, 주문을 받고 시작한다. 음식마다 불 조절이 다르고, 맛을 내는 손놀림이 다르다. 여러 가지 음식을 동시에 해야 하기에 머릿속이 이런 저런 계산으로 복잡하다. 그래서 예민해지는 모양이다.

손님들이 가장 맛있다고 하는 요리가 무엇인가요?
참 곤란한 질문이다. 요리는 유산슬을 찾는 분들이 많다. 나이가 지긋한 손님들은 수초면(국물 없는 볶음면)을 좋아들 하신다. 젊은 층들은 사천짜장을 맛있다고들 한다. 예전에는 음식점 마다 그 집 고유의 맛이 있었다. 그 집만의 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손님들이 이런 맛으로 만들어
달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아들은 요즘 사람의 입맛에 부합하는 퓨전맛으로
가자고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동양반점의 맛을 알아주고 찾아주는 이들을 위해,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맛으로 음식을 만들고 싶다. 훗날 아들이 가게를
맡아서 하게 되면 그 때는 그의 맛을 낼 것이다.

반 백년을 구포에서 중국요리를 만드셨다.
당신에게 구포와 요리는 어떤 의미인가?
인천에서 태어났고, 구포는 제2의 고향이다.
화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부모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학원이 아닌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다.
머리로 익힌 기술이 아니라 손으로 감으로 익혔다.
내가 만든 요리는 그냥 나의 일부이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다.